행록1장21절
이해에 고부인(古阜人) 전 봉준(全琫準)이 동학도를 모아 의병을 일으켜 시정(時政)에 반항하니 세상이 흉동되는지라. 이때에 금구인 김 형렬(金亨烈)이 상제의 성예를 듣고 찾아뵌 후 당시의 소란을 피하여 한적한 곳에 가서 함께 글 읽으시기를 청하므로 글방을 폐지하고 전주군 우림면 동곡(全州郡雨林面銅谷) 뒷산에 있는 학선암(學仙庵)으로 가셨으나 그곳도 번잡하기에 다른 곳으로 떠나셨던바 그곳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도다.
행록1장22절
갑오년 五월 어느 날 밤 상제께서 주무시고 계시는 중에 한 노인이 꿈에 나타나 「나도 후천 진인이라. 천지현기와 세계대세를 비밀히 의논할 일이 있노라」고 아뢰는도다.
행록1장23절
전 봉준(全琫準)이 학정(虐政)에 분개하여 동학도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킨 후 더욱 세태는 흉동하여져 그들의 분노가 충천하여 그 기세는 날로 심해져가고 있었도다. 이때에 상제께서 그 동학군들의 전도가 불리함을 알으시고 여름 어느 날 「월흑안비고 선우야둔도(月黑雁飛高 單于夜遁逃) 욕장경기축 대설만궁도(欲將輕騎逐 大雪滿弓刀)」의 글을 여러 사람에게 외워주시며 동학군이 눈이 내릴 시기에 이르러 실패할 것을 밝히시고 여러 사람에게 동학에 들지 말라고 권유하셨느니라. 과연 이해 겨울에 동학군이 관군에게 패멸되고 상제의 말씀을 좇은 사람은 화를 면하였도다.
행록1장24절
고부 지방의 유생들이 을미(乙未)년 봄에 세상의 평정을 축하하는 뜻으로 두승산(斗升山)에서 시회(詩會)를 열었을 때 상제께서 이에 참여하시니라. 이때 한 노인이 상제를 조용한 곳으로 청하여 모셔가더니 작은 책 한 권을 전하거늘 그 책을 통독하셨도다.
행록1장25절
유생들은 세상이 평온하다고 하나 세도는 날로 어지러워졌도다. 상제께서 이때 비로소 광구천하하실 뜻을 두셨도다.
행록1장26절
五월이 되어 상제께서 본댁을 떠나셨으나 가신 곳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도다. 그리하여 매우 염려하는 상제의 부친을 보고 유 덕안(兪德安)은 대신하여 상제를 찾으려고 의관을 갖추고 객망리를 떠났도다. 그가 태인(泰仁) 강삼리에 이르렀을 때 관군은 의병 두 사람을 잡고 덕안을 동학군으로 몰고 포박하여 전주 용머리 고개 임시 형장으로 끌고 가니라. 두 사람이 먼저 참형되고 덕안의 차례가 되었을 찰나에 하늘이 캄캄하여지고 천둥치고 번개가 번쩍이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지라. 관군들은 지레 겁을 먹고 도망하였으나 비바람은 그치지 않고 밤은 깊어 사방이 보이지 않아 덕안이 정신을 차리니 두 사람의 시체만이 짙은 어둠 속에 뒹굴어 있었도다. 무서움에 쫓겨 그는 먼 곳에서 비치는 등불을 향하여 지친 몸을 이끌어가니 날이 새기 시작하니라. 등불은 간데온데없는 산중이었도다. 그제서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 포박을 풀고 재생의 기쁨을 안고 집에 돌아왔느니라. 그는 이 재생의 인도를 호랑이가 불빛을 비춰 준 것으로 믿었도다. 얼마 후 상제께서 객망리에 홀연히 돌아오셨도다. 상제께서 덕안을 보시고 「험한 시국에 위급한 환경을 당하여 고통이 많았도다」 말씀하며 위로하시니 그는 더욱 자신의 재생을 상제의 덕화라고 굳게 믿으며 재생의 감격을 되새기니라. 당시는 가릴 사이 없이 마구 죽이는 판국이었도다.
행록1장27절
상제께서 임인년 어느 날 김 형렬과 함께 금산사(金山寺) 부근의 마을에 가서 계셨도다. 이 부근의 오동정(梧桐亭)에 살고 있던 김 경안(金京安)이란 사람이 기독교의 신약전서를 가지고 있었던바 상제께서 어느 날 김 형렬에게 신약전서 한 권을 구하게 하시니라. 그는 이르신 대로 그로부터 책을 빌려다 상제께 드렸더니 상제께서 그것을 불사르셨도다.
행록1장28절
그 후 어느 날 형렬은 상제를 모시고 오동정을 찾아 음식을 대접하였도다. 이 자리에 경안이 찾아와서 빌려준 신약전서를 돌려달라고 말하기에 형렬이 우물쭈물하면서 딱한 표정만 짓고 앉아 있노라니 상제께서 가름하시면서 「곧 돌려주리라」고 말씀하시니라. 마침 이때에 그곳을 한 붓 장수가 지나가는지라. 상제께서 그를 불러들이고 음식을 권한 다음에 그 붓 상자를 열어보이라고 청하시니 그가 분부에 좇으니라. 상제께서 「그대는 예수를 믿지 아니하니 이 책은 소용이 없을 터이므로 나에게 줄 수 없느냐」고 물으시니 그는 음식 대접을 받은 터이어서 기꺼이 응하는지라. 상제께서 그 책을 경안에게 돌려주시니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어리둥절하였도다.
행록1장29절
상제의 신성하심이 하운동(夏雲洞)에도 알려졌도다. 이곳에 이 선경(李善慶)이란 자의 빙모가 살고 있었도다. 상제께서 주인을 찾고 「그대의 아내가 四十九일 동안 정성을 들일 수 있느냐를 잘 상의하라」 분부하시니라. 주인은 명을 받은 대로 아내와 상의하니 아내도 일찍부터 상제의 신성하심을 들은 바가 있어 굳게 결심하고 허락하니라. 상제께서 다시 주인에게 어김없는 다짐을 받게 하신 뒤에 공사를 보셨도다. 그 여인은 날마다 머리를 빗고 목욕재계한 뒤에 떡 한 시루씩 쪄서 공사 일에 준비하니라. 이렇게 여러 날을 거듭하니 아내가 심히 괴로워하여 불평을 품었도다. 이날 한 짐 나무를 다 때어도 떡이 익지 않아 아내가 매우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노라니 상제께서 주인을 불러 「그대 아내는 성심이 풀려서 떡이 익지 않아 매우 걱정하고 있으니 내 앞에 와서 사과하게 하라. 나는 용서하고자 하나 신명들이 듣지 아니하는도다」고 이르시니라. 주인이 아내에게 이 분부를 전하니 아내가 깜짝 놀라면서 사랑방에 나와 상제께 사과하고 부엌에 들어가서 시루를 열어보니 떡이 잘 익어 있었도다. 부인은 이로부터 한결같이 정성을 들여 四十九일을 마치니 상제께서 친히 부엌에 들어가셔서 그 정성을 치하하시므로 부인은 정성의 부족을 송구히 여기니 상제께서 부인을 위로하고 「그대의 성심이 신명에게 사무쳤으니 오색 채운이 달을 끼고 있는 그 증거를 보라」고 하셨도다.
행록1장30절
상제께서 정읍으로부터 진펄이나 논이나 가리지 않고 질러오셨도다. 이것을 보고 류 연회(柳然會)란 동리 사람이 「길을 버려두고 그렇게 오시나이까」라고 말하니 상제께서 「나는 일을 하느라고 바쁘건만」 하시며 그대로 가시니라. 이 일로부터 수년이 지난 후에 그가 측량기사가 되어 신작로를 측정하게 되었는데 그 측량이 바로 상제께서 함부로 걸어가신 선이 되니라. 지금 덕천(德川) 사거리에서 정읍을 잇는 신작로가 바로 그 길이로다.